KBS가 개편안을 내놓았다. KBS 1TV에서 방영되던 <대왕세종>이 2TV로 옮겨와 현 <연예가중계>와 <개그콘서트>시간에 방영되고, <엄마가 뿔났다> 이후 편성표는 한 시간씩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럼, KBS는 타 방송국보다 1시간 더 연장 방송하나? 무슨 말씀, 굴러온 돌이 있으면 어디선가 박힌 돌이 빠지는 법. 불똥은 <드라마시티>로 튀었다.
KBS는 <드라마시티>를 폐지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지상파에 남아있던 마지막 단막극이었다. MBC는 2007년 <베스트극장>을 없애고 시즌제 드라마를 신설했다. 방송국도 실용 노선을 걸어가고 있는 때다. 새 장관 임명에서 빚어진 도덕성 논란을 비롯한 각종 해프닝에 대해 진중권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는데, 이게 정녕 시작이라면 그 끝은 얼마나 창대할 것인가. KBS의 변명은 다음과 같다. "프로그램당 광고가 24개 붙을 수 있는데 <드라마시티>는 1~2개에 그칠 때가 많다." (2007년 인터뷰지만 지금 <드라마시티>에 폐지에 대한 KBS의 입장이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 본다)
'대박'드라마는 당장 '생산'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방송사들이 진정한 '대박'을 원한다면, 기다림의 미덕부터 배워야할 일이다. 기다림의 미덕이 '대박'을 낳았고, 조급함이 '위기'를 부른 것은 한국영화계가 선배다. 요즘 한국영화가 위기라고들 한다. 백만명은 우스웠고 천만 관객쯤 되어야 명함 내밀던 시절은 다 어디로 갔나? 2003년부터 2005년으로 이어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현상이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1994)>과 참패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있었기에 <살인의 추억(2003)>이 가능했고, <괴물(2006)>이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븐데이즈(2007)>의 원신연 감독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전에 단편 <빵과 우유(2003)>로 단편영화상을 받았고, <가발(2005)>, <구타유발자들(2006)>을 연타로 '말아먹었'었다. 봉준호와 원신연이 제 기량을 발휘하길 기다려준 제작사들의 기다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드라마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드라마의 시청률이 40%를 육박하고, 시청률 순위 20위 중 절반 이상이 드라마다. 가히 드라마의 르네상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공 시청률을 선보이는 <이산>의 이병훈PD는 38년 동안 드라마를 연출해왔고 김수현 작가는 40년 동안 드라마를 집필했다. 그들에게도 신인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노희경 작가는 <베스트극장>으로 데뷔했고 <궁>을 연출한 황인뢰PD의 감각은 <베스트극장-샴푸의 요정>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7년 <커피프린스 1호점>의 신드롬 또한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에서 차근차근 시작된 결과다. 하루아침에 <하얀거탑(2007)>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날벼락같이 <내이름은 김삼순>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줌마(2000)>가 있었고, 1992년 안판석PD와 주찬옥 작가가 연출한 <베스트극장 -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가 있었기에 <하얀거탑>이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르네상스를 맞이한 선배 한국 영화계는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볼까. 영화 제작사들은 영화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자 조급해졌다. '돈'되는 영화들로 몰리기 시작했고 이는 초호화 캐스팅에 기반한 개성없는 시나리오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길 감독들이 입봉하고, 대부분 저조한 실적을 내놓았고, 영화 시장에서 버려졌다. 감독 지망생들은 입봉을 위해 '돈'되는 기미를 보여주는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본은 상상력을 잠식한다. 관객은 참신함이 사라진 스크린에 등을 돌렸다.
영화계서 '단편영화'가 신인 감독들의 역량 시험장이자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이터베이스'라면, 방송국에서는 '단막극'이 그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신인 배우들이 연기를 배워가고, 신인 작가와 연출가들이 참신함과 상상력을 무기로 역량을 마음껏 펼쳐보이던 유일한 창구가 <베스트극장>이었고 <드라마시티>아니었던가. 항상 새로운 것을 목말라하는 방송국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치였으리라. 영화제작자들은 더 이상 감독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방송국은 수익성 창출을 이유로 단막극을 폐지했다. '의의'와 '가치'가 사라진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이제 콘텐츠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돈'이다.
<대왕세종>은 거뜬히 광고 10개 이상을 받을 수 있을게다. 5위 안팎의 안정된 시청률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 두개 광고받아 KBS2TV의 수익성을 저해하던 <드라마시티>는 경쟁상대도 안될테지. 폐지의 문제점은 이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존치의 의의를 묵살하고 수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베스트극장>은 시즌제 드라마라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드라마시티>는 대안도 없다. 이제 드라마PD들은 천재가 되거나, 김수현작가나 노희경작가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다음주 종영되는 <쾌도 홍길동>과 함께 <드라마시티>는 율도국으로 떠난다. 그 곳에선, 새로움과 진보의 목소리를 드높이기를. 마지막으로, 폐지'안'이 언제까지나 안건으로 남기를 바랄뿐이다.